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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경기력 뒤에 숨은 마음의 건강

2026.01.20


운동선수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도 강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선수들은 불안, 우울, 수면장애, 번아웃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엘리트 스포츠 환경은 매일 기록과 순위가 공개되고, 경기력의 작은 변화도 즉각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성적과 커리어가 직결된 세계에서 선수들이 받는 압박은 일반 직업군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이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멘탈이 약하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낙인이 따라붙기 쉽고, 치료를 받는 사실이 팀 내 입지나 향후 계약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크다. 특히 한국 스포츠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참아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는 문화적 압력은 이러한 침묵을 더욱 강화한다.

  해외 연구들은 엘리트 선수의 정신건강 문제가 예외적인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현역 엘리트 선수의 약 20~30%가 우울, 불안, 수면장애 등 임상적 수준의 정신건강 증상을 경험한다.

캐나다의 올림픽·패럴림픽 준비 엘리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상당수가 우울과 불안 증상을 보고했다. 이는 선수 개인의 취약성보다는, 스포츠라는 직업 환경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스트레스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제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고백을 통해 점차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미국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는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신건강 문제와 공중에서의 공간 인식 장애로 알려진 ‘트위스트 증상’을 이유로 주요 종목에서 기권했고, 이후 불안과 심리적 부담을 공개하며 선수 멘탈헬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 역시 프렌치 오픈 기자회견 의무와 관련한 심리적 압박과 우울·불안 경험을 밝히며 대회 기권을 선택했다. 이들의 결정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고강도 경쟁 환경 속에서 선수의 정신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로 받아들여졌다.

  스포츠정신의학은 이러한 현실을 다루기 위해 발전해 온 전문 분야다. 선수의 신체 조건과 경기 일정, 반도핑 규정 등을 함께 고려해 정신건강을 평가하고 치료하며, 약물 처방 시에도 경기력과 부작용, 치료면책 여부를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부상 후 복귀 과정의 두려움, 팀과의 관계, 미디어 노출, 은퇴 전후의 정체성 혼란 등 선수에게 특수한 심리적 요인 역시 치료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선수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개입하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는 선수의 정신건강이 더 이상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의학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야 할 핵심 영역임을 보여준다. 운동선수 역시 인간이며, 극도의 스트레스 환경에 놓인 특수 직업군일 뿐이다. 몸의 이상을 조기에 점검하듯, 마음의 신호 역시 전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스포츠정신의학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분야다.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은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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