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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계절과 정신건강의 이해와 관리

2025.12.09


창밖 풍경이 바뀔 때마다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의 고민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유독 ‘요즘 만사가 귀찮고 잠만 쏟아진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꼭 진료실 안이 아니어도 계절 변화는 우리 신체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흔히 ‘가을 탄다’고 말하는 기분의 변화가 해마다 반복될 경우 계절성 정서 변화를 떠올릴 수 있다.

계절성 정서 변화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 상 독립된 진단명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주로 겨울철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겨울마다 경미한 우울과 무기력을 경험하다가 스스로 해결되는 ‘winter blues’부터 직업이나 사회적 기능 등 일상의 중요한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심한 기분 장애까지도 발생 가능하다.

후자의 경우에는 흔히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주요 우울장애 (Major depressive disorder) 중 계절 변화, 즉 한 해 중 특정한 시기에 우울감이 발생하거나 심해지는 ‘계절성을 동반하는’ 특정한 패턴으로 이해한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은 보다 경미하고 일상 기능에 큰 장애를 주지 않는 ‘winter blues’에 비해 정서 장애로 인한 직업, 사회적 기능 등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겨울철 계절성 우울증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핵심은 ‘일조량의 감소’와 ‘생체 리듬의 교란’이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뇌에서는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한다. 동시에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의 조절 기능이 떨어진다. 덩달아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비타민 D의 합성 수치도 변화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체 리듬의 착각으로 인한 기분과 활동량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겨울철 계절성 우울증이 일반적 우울의 형태와는 정반대의 양상, 즉 ‘비정형 (atypical) 우울증’의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는 과수면에 시달린다. 아침에 잠을 깨는 것이 힘들고 종일 피곤하다. 또한 탄수화물과 당분에 대한 갈망이 증가하면서 식욕이 증가한다고 느끼고, 결과적으로 체중이 증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분도 슬픔보다는 무기력하고 팔다리가 천근만근인 느낌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기분이 단지 며칠 기분이 개운치 않다고 해서 계절성 우울증을 진단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대로 계절성 우울증은 우울증의 특정 패턴으로 이해하므로, 주요 우울장애의 진단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그에 더하여 다음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 규칙적인 시간적 연관성 : 특정 계절 (예: 가을/겨울)에 우울 삽화가 시작되고, 특정 계절 (예: 봄)에 완전히 회복되는 패턴이 뚜렷하다.

● 2년 이상의 반복 : 지난 2년 동안 이 패턴이 반복되었고, 해당 기간 비계절성의 우울 삽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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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의 우위: 평생 겪은 우울 삽화 중 계절성 삽화의 횟수가 비계절성보다 월등히 많다.

계절성 우울증은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다. 병원에서는 인공적으로 강한 빛을 쬐어주는 광선 치료 (Bright Light Therapy)를 하거나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광선 치료는 매일 아침 일찍 최소 2,500 lux 이상의 밝은 빛을 30분-1시간 정도 쬐는 치료로, 강력한 빛을 망막을 통해 전달하여 뇌의 시상하부에 위치한 생체 시계의 생체 리듬을 재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광선 치료만으로 효과가 부족할 경우, 항우울제 사용을 고려한다. 계절이 돌아오면 높은 확률로 재발하기 때문에, 증상이 예상되는 시기 (예: 초가을)부터 예방적 항우울제 투여를 시작하기도 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전반적인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겨울철에 대한 부정적 사고 (‘겨울은 끔찍해, 추워지면 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를 교정하고 활동 수준을 높이기 위한 생활 습관 관리를 통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병원에 오기 전, 일상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또한 존재한다.

● 아침 산책은 무기력한 마음을 털어내는 일차 치료제: 이른 아침에 충분히 햇빛을 쪼이는 것은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전략이다. 흐리거나 비가 온다고 해도 야외는 실내보다 더 밝은 자연광을 얻을 수 있어 생체 리듬을 조절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가벼운 신체 활동: 운동은 가장 강력하게 우울을 예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무기력한 기분이 커질수록 문을 열고 나가 걸어보자. 어느 순간, 서늘한 겨울의 아침 공기가 개운하게 느껴질 것이다. 바쁜 일상으로 이른 시간의 산책이 어렵다면, 점심 식후의 가벼운 산책도 좋다.

●생활 속 빛 조절: 낮에는 생활 공간의 커튼과 블라인드를 활짝 열고 창문 근처에 책상이나 작업 공간을 두기를 권유한다. 반대로 저녁에는 취침 2시간 전부터 조명의 조도를 낮추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블루 라이트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동면을 피하기: 겨울잠 자는 곰처럼 웅크리고 있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우울하고 무기력 할수록 친구를 만나고 외출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기에,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재미있는 활동을 계획하고 친구, 가족과 미리 약속을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과 함께 하는 활동은 약속을 취소하지 않는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계절성 우울증은 내 마음이 유난히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니다. 그저 나의 몸이 계절의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겨울을 혼자 버티기는 너무 힘들다면, 언제든 전문가를 찾아가 보길 권한다. 혼자서는 겨울이 너무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어느새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이기에. 계절이 바뀌면 이 우울감도 반드시 지나간다.
 
인하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맹세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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